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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桓檀古記) 또는 한단고기1979년 출간된 한국의 고대 역사서이며, 이른바 동이족에 대한 자부심과 그 위대함을 서술한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한국사학계에서는 20세기 이후에 조작된 위서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나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환단고기》의 진서론을 펼치고 있다.[1]

북조선에서는 1993년 이후 단군유해의 발견과 단군묘를 조성하는 등 고조선의 역사를 실사(實史)로서 인정하고, 《규원사화》나 《단기고사》의 서적들을 연구에 활용하고 있으나, 《환단고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2][3]

《환단고기》〈범례〉에 따르면, 1911년홍범도(洪範圖), 오동진(吳東振)의 자금지원으로 계연수(桂延壽)가 편찬하고 이기(李沂)가 교열(校閱)하였다고 한다. 이를 1949년이유립오형기에게 정서시켰고, 한 차례 원본과 함께 관련 자료를 분실하였다가 그 후 기억을 되살려 필사하였다고 주장되었다.[4]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이유립이 복원한 1979년 영인본(광오이해사 발행)이다.[5]

 

출간 경위 및 경과

  • 1911년, 광무 15년(《환단고기》〈범례〉에 따른 연도. 실제 광무 연호는 10년까지만 사용) 계연수가 전해지는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라는 책명으로 30부를 간행하였다고 한다.
  • 1920년 이전, 이유립이 《환단고기》의 원본을 계연수(~ 1920년)로부터 건네받았다고 한다.
  • 1949년에 이유립의 문인이 오형기가 이유립의 부탁을 받아 《환단고기》를 정서(正書)하였다고 《환단고기》의 발(跋)에 적혀 있다.
  • 1975년에 1920년대부터 보관해 오던 원본이 모든 관련 자료와 함께 유실되었으나, 이유립이 기억을 되살려 복원했다고 전해진다.
  • 1979년 11월에 필사·영인한 한문본(100부 한정)이 광오이해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고, 이유립은 박창암을 통하여 일본의 변호사 출신 재야학자 가지마 노보루(鹿島曻)와 접촉하여 직접 원본을 전달하였다.[6][7]
  • 1982년 일본어 번역본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가지마 노보루는 이 책에 붙여진 상세한 해제를 통해 고대 한반도에 ‘우가야 왕조’가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 1983년 이유립은 배달의숙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환단고기》를 다시 영인·출간하였다. 이때 이유립은 1979년에 출간된 《환단고기》를 "조병윤이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출판한 것"이라고 주장[8]하며 자신이 일부 오자를 교정하여 새롭게 출판하였다고 말하였다.[9] 그러나 이때 출판된 배달의숙본 《환단고기》는 출간 연도를 1979년으로 쓰고 있다.
  • 1985년 일반을 대상으로 한 첫 한글 번역본[10]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개요

《환단고기》는 《삼성기 상(上)》, 《삼성기 하(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각기 다른 시대에 쓰여졌다는 5권(4종류)의 책을 엮은 것이다.

  • 《삼성기》는 환웅이라 불리는 왕이 다스린 1565년 동안의 배달국과 그 전신이라 하는 3301년간의 환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 《단군세기》는 47대의 단군이 2천 년 간 다스린 역사를 다루고 있다.
  • 《북부여기》는 북부여에 6명의 왕이 있었으며 이것이 고구려의 전신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 《태백일사》는 환국, 배달국, 삼한,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 한말 - 일제강점기 초에 대종교가 경전으로 채택한 《삼일신고》와 1975년에 채택한 《천부경》,《참전계경》이 포함되어 있다.

구성

  • 목차
  • 범례(凡例)
  • 삼성기(三聖紀) 상 - 안함로 지음.
  • 삼성기(三聖紀) 하 - 원동중(元董仲) (신시역대기 포함)
  • 단군세기(檀君世紀) - 이암 지음.
    • 단군세기서(檀君世紀序)
    • 단군세기
  • 북부여기(北夫餘紀) - 휴애거사(休崖居士) 범장(范樟) 지음.
    • 북부여기(北夫餘紀) 상
    • 북부여기(北夫餘紀) 하
    •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태백일사(太白逸史) -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지음.
    • 태백일사목록(太白逸史目錄)
    •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 환국본기(桓國本紀)
    • 신시본기(神市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 삼한관경본기제사(三韓管境本紀)
      • 마한세가(馬韓世家) 상
      • 마한세가(馬韓世家) 하
      • 번한세가(番韓世家) 상
      • 번한세가(番韓世家) 하
    •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천부경, 삼일신고 포함
    •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 태백일사발(太白逸史跋)
  • 환단고기발(桓壇古記跋)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문헌 [편집]

《환단고기》에서 언급된 문헌은 다음과 같다.[11]

  • 확인되는 문헌 - 《사기》, 《운급헌원기》, 《관자》, 《한서
  • 확인되지 않는 문헌 -《대변설(大辨設)》, 《삼성밀기(三聖密記)》, 《삼한비기(三韓秘記)》, 《조대기(朝代記)》, 《진역유기(震域遺記)》, 《표훈천사(表訓天祠)》

주요 내용

《환단고기》는 고조선 이전에 환국배달국이 존재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두 나라는 환인환웅이 통치하였으며, 각각 7대와 18대를 전하였다고 한다.

환국 [편집]

건국 [편집]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인은 사백력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하여 신이 되고 이 환인과 함께 하늘로부터 어린 남녀 800명이 천해의 동쪽 땅인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와 건국하였다고 한다. 사백력을 시베리아로, 천해는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로 비정되기도 한다.

12연방 [편집]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은 12개의 나라로 구성된 연방국가이며 각각의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또는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또는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裨國) 또는 시위국(豕韋國) 또는 통고사국(通古斯國), 수밀이국(須密爾國) 이다. 그 영토가 매우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였다[12]고 하나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일부는 수밀이국이 수메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역대 환인 [편집]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의 존속기간은 3301년, 혹은 63182년 동안 왕이 7대라고 한다. 다수의 대한민국 사학자들은 이러한 내용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환인은 다음과 같다.

  • 1대 환인 : 안파견(安巴堅) 환인
  • 2대 환인 : 혁서(赫胥) 환인
  • 3대 환인 : 고시리(古是利) 환인
  • 4대 환인 : 주우양(朱于襄) 환인
  • 5대 환인 : 석제임(釋提壬) 환인
  • 6대 환인 : 구을리(邱乙利) 환인
  • 7대 환인 : 지위리(智爲利) 환인 또는 단인(檀仁)[13]

배달국 [편집]

《삼성기》의 〈신시역대기〉와 《태백일사》〈신시본기〉에서는 배달국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단군이 세운 고조선 이전의 만주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한민족의 고대국가라고 한다. 중국사서에서 이 나라를 ‘구리’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14] 신화에 등장하는 치우가 배달국의 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주신(主神)인 환인의 아들인 환웅은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등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내려와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며 모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거하면서 다스렸는데, 이를 신시라 하였다고 한다. 신시의 멸망에 대한 별도의 기록은 없으며, 단지 신시를 이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하였다고 하였다.

《환단고기》에서는 환웅이 나라를 세운 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백성을 보살피는 직책을 다시 만들었는데 금수와 가축의 이름으로 벼슬을 하였다고 한다. 즉, 호가(虎加), 우가(牛加), 마가(馬加), 응가(鷹加), 노가(鷺加) 등과 같이 이름하였으나 그 자세한 것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짐승의 이름으로 관직을 나타내는 것은 후대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치우의 전쟁 [편집]

《환단고기》에는 치우헌원·유망 사이의 전쟁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개략을 보면 다음과 같다. 치우가 신시국의 임금이 되었을 때에 중국의 임금은 유망(楡罔)이었다. 치우는 신시국의 무리와 함께 황하의 이북 땅에서 군대를 일으켜 유망을 공격하였으며, 승리하였다.

치우가 유망의 나라를 아울러 통치한다는 소리를 헌원이 듣고 공격하여 왔다. 1차 전쟁에서 치우는 헌원과 탁록(涿鹿)에서 싸워 이겼으며 이때 헌원은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회대(淮岱)와 기연(冀兗)의 모든 땅을 신시의 영토로 삼았다고 한다. 치우는 이후에도 70여 차례 헌원과의 전쟁에서 모두 이겼으며, 치우가 죽은 후에 점차 그 땅에서 물러나왔지만 많은 유민들이 고조선 시대에도 남아 있어 그 영향력을 중국에 미쳤다고 한다. 중국 사서에서는 이들을 회대지방에 있으므로 주로 회이(淮夷)라 기록하고 있으며, 우이(嵎夷), 래이(萊夷), 도이(島夷), 구이(九夷)라고도 기록하였다고 한다.

역대 환웅 [편집]

《환단고기》는 에는 환웅이 천오백여 년간 배달국을 다스렸다고 하며, 그 역년을 기록하고 있다.

  1. (기원전 3898년): 거발한(居發桓)환웅, 재위 94년, 120세
  2. (기원전 3804년): 거불리(居佛理)환웅, 재위 86년, 102세
  3. (기원전 3718년): 우야고(右耶古)환웅, 재위 99년, 135세
  4. (기원전 3619년): 모사라(慕士羅)환웅, 재위 107년, 129세
  5. (기원전 3512년): 태우의(太虞儀)환웅, 재위 93년, 115세
  6. (기원전 3419년): 다의발(多儀發)환웅, 재위 98년, 110세
  7. (기원전 3321년): 거련(居連)환웅, 재위 81년, 140세
  8. (기원전 3240년): 안부련(安夫連)환웅, 재위 73년, 94세
  9. (기원전 3167년): 양운(養雲)환웅, 재위 93년, 139세
  10. (기원전 3071년): 갈고(葛古)환웅 또는 독로한환웅 재위 100년, 125세
  11. (기원전 2971년): 거야발(居耶發)환웅, 재위 92년, 149세
  12. (기원전 2897년): 주무신(州武愼)환웅, 재위 105년, 123세
  13. (기원전 2774년): 사와라(斯瓦羅)환웅, 재위 67년, 100세
  14. (기원전 2707년): 자오지(慈烏支)환웅, 치우천왕이라고도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 151세
  15. (기원전 2598년): 치액특(蚩額特)환웅, 재위 89년, 118세
  16. (기원전 2509년): 축다리(祝多利)환웅, 재위 56년, 99세
  17. (기원전 2453년): 혁다세(赫多世)환웅, 재위 72년, 97세
  18. (기원전 2381년): 거불단(居弗壇)환웅 혹은 단웅(壇雄), 재위 48년, 82세

제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열두 아들 중 막내가 태호 복희이며, 그의 후손이 현재의 산시 성에 살았다고 한다.

고조선 [편집]

《환단고기》〈단군세기〉는 단군의 치세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그 역년은 다음과 같다.

  1. 왕검(王儉)단군 : 재위 93년
  2. 부루(扶婁)단군 : 재위 58년
  3. 가륵(嘉勒)단군 : 재위 45년
  4. 오사구(烏斯丘)단군 : 재위 38년
  5. 구을(丘乙)단군 : 재위 16년
  6. 달문(達文)단군 : 재위 36년
  7. 한율(翰栗)단군 : 재위 54년
  8. 우서한(于西翰) 혹은 오사함(烏舍咸)단군 : 재위 8년
  9. 아술(阿述)단군 : 재위 35년
  10. 노을(魯乙)단군 : 재위 59년
  11. 도해(道奚)단군 : 재위 57년
  12. 아한(阿漢)단군 : 재위 52년
  13. 흘달(屹達) 혹은 대음달(代音達)단군 : 재위 61년
  14. 고불(古弗)단군 : 재위 60년
  15. 대음(代音) 혹은 후흘달(後屹達)단군 : 재위 51년
  16. 위나(尉那)단군 : 재위 58년
  17. 여을(余乙)단군 : 재위 68년
  18. 동엄(冬奄)단군 : 재위 49년
  19. 구모소(緱牟蘇)단군 : 재위 55년
  20. 고홀(固忽)단군 : 재위 43년
  21. 소태(蘇台)단군 : 재위 52년
  22. 색불루(索弗婁)단군 : 재위 48년
  23. 아홀(阿忽)단군 : 재위 76년
  24. 연나(延那)단군 : 재위 11년
  25. 솔나(率那)단군 : 재위 88년
  26. 추로(鄒盧)단군 : 재위 65년
  27. 두밀(豆密)단군 : 재위 26년
  28. 해모(奚牟)단군 : 재위 28년
  29. 마휴(摩休)단군 : 재위 34년
  30. 나휴(奈休)단군 : 재위 35년
  31. 등올(登兀)단군 : 재위 25년
  32. 추밀(鄒密)단군 : 재위 30년
  33. 감물(甘勿)단군 : 재위 24년
  34. 오루문(奧婁門)단군 : 재위 23년
  35. 사벌(沙伐)단군 : 재위 68년
  36. 매륵(買勒)단군 : 재위 58년
  37. 마물(麻勿)단군 : 재위 56년
  38. 다물(多勿)단군 : 재위 45년
  39. 두홀(豆忽)단군 : 재위 36년
  40. 달음(達音)단군 : 재위 18년
  41. 음차(音次)단군 : 재위 20년
  42. 을우지(乙于支)단군 : 재위 10년
  43. 물리(勿理)단군 : 재위 36년
  44. 구물(丘勿)단군 : 재위 29년
  45. 여루(余婁)단군 : 재위 55년
  46. 보을(普乙)단군 : 재위 46년
  47. 고열가(古列加)단군 : 재위 58년

〈북부여기〉 의 내용

북부여와 가섭원부여의 역사를 적고 있다.

해모수 [편집]

해모수는 북부여의 창건자이며 첫 단군이었다. 그는 고구려의 근본이었다.

해모수(解慕漱)는 고조선의 44번째 구물 단군에 의해 창건된 진조선의 고조선 왕실의 구성원이었다. 그는 고열가 단군의 지배하에 23세의 나이로 장군이 되었다. 고조선의 붕괴시에 충성으로 제국에 봉사하였다.

세 왕국으로 나뉘었던 고조선은 무너지고 있었다. 중심 왕국이었던 진조선은 군대가 더이상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상황으로까지 붕괴하였다. 그는 더이상 제국의 통제내에 있지 않았음을 알고 고열가 황제는 권력을 버리고 제국을 오가의 손에 넘겼다. 다섯 명의 중앙 귀족, 오가 아래에서 군대의 장군과 지도자들은 떠나서 반란을 일어키기 시작하였다. 제국을 마지막으로 떠난이가 해 모수였다.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로 장군이 되었다. 해모수는 제국을 재건하기위해서 떠났다. 해모수와 그의 군대는 장당경 요새로 가서 왕궁을 지었다. 그 곳에서 해모수는 천왕랑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황제와 동등한 칭호이다. 해모수는 그의 동료 고조선 장군들의 반란을 대부분 격파하고 진조선영토의 대부분을 다시 차지하였다. 이로 인해 천왕랑 해모수는 다섯명의 중앙귀족에게 북부여의 이름 아래에 고조선을 재건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북부여를 창건한 후 해모수는 고열가 황제가 돌아올 것을 6년을 기다렸다. 전 황제가 정계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 확실해지자 그는 단군의 칭호가 주어졌다.

  • 해부루와의 관계
해부루는 북부여 네번째 단군 고우루의 동생이었다. 기원전 86년 고우루가 죽자 그의 동생 해부루는 왕좌에 올라 북부여의 단군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고열가의 후손 고두막이 반란을 일으켜 왕좌를 차지하고 해부루를 동쪽으로 밀어냈다. 해부루는 그의 추종자와 약갼의 백성들을 이끌고 동해 근처의 가섭원으로 이동하였고 동부여를 창건하였다.
  • 고주몽과의 관계
고주몽은 불리지로도 알려진 고모수의 아들로 옥저후였다. 불리지는 고진 왕의 손자였는데, 고진은 해모수의 차자였다.

고모수는 하백의 딸 유화와 만나 결혼하였지만 그들의 아이 주몽을 볼 수 있기 전에 전투중에 전사하였다. 고주몽은 결국 동부여에서 자랐고 동부여 왕자들의 괴롭힘을 당하고 탈출하였다. 경계를 넘어서 그는 북부여로 들어 갔다. 고주몽은 북부여의 6번째 단군 고무서의 환영을 받았다. 고무서 단군은 그의 두번째 딸 소서노를 주몽과 결혼시켰다. 고무서가 아들없이 죽자 주몽은 북부여의 7번째 단군이 되었고 결국 이웃 왕국을 정복하고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창건하였다.

  • 죽음
단군 해모수는 기원전 195년에 죽었으며, 그의 연장자가 왕위를 이어받아, 북부여의 제 2 통치자인 부여의 모수리가 되었다.

모수리 [편집]

모수리(기원전 195년경 ~ 기원전 170년)는 만주에서 시작된 한국 고대 왕국 북부여의 두번째 단군이었다. 모수리 단군은 북부여의 창건자 해모수 단군의 장남으로 고진의 형이기도 하였다. 고진은 고구려의 창건자 고주몽의 증조 할아버지였다.

기원전 195년 해모수의 사후 모수리는 왕좌에 올라 북부여의 제2대 단군이 되었다. 해모수의 계승자로 모수리는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또한 부왕이 창건한 신생국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다. 기원전 170년, 모수리 단군은 죽고 그의 왕자 고해사가 계승하였다.

고해사 [편집]

고해사(기원전 약 170년 ~ 기원전 121년)는 만주에 위치한 한국의 고대 왕국 북부여의 세번째 단군이었다. 고해사 단군은 북부여 두번째 단군 모수리의 장남이었고, 그의 부왕의 치세에 북부여의 태자였다. 그는 또한 고우루와 동부여의 창건자 해부루의 아버지였다.

기원전 121년 고해사 단군이 죽자 그의 장남인 태자 고우루가 북부여의 네번째 단군이 되었다.

고우루 [편집]

'고우루' 또는 '해우루'(기원전 약 121년 ~ 기원전 86년)는 만주에 근원한 한국의 고대 왕국 북부여의 네번째 단군이었다.

고우루는 북부여 제3대 단군 고해사의 장남이었다.고우루는 그의 부왕의 치세아래에서 북부여의 태자로 자랐다. 그는 동부여의 창건자 해부루의 형이기도 하였다. 기원전 86년 고우루는 분명히 상속자가 없이 죽고 그의 동생에 의해 계승되었다.

기원전 121년 부왕 고해사의 사후 태자 고우루는 왕좌에 올라 북부여의 네번째 단군이 되었다. 위만 조선이 해체되기 시작하였고 북부여는 위만조선을 적으로 규정하며 진조선의 정통성을 주장하였다. 고우루는 위만 조선을 공격하여 위만조선의 경제가 휘청거렸다.

이즈음 한무제가 북동쪽으로 위만조선을 1년간 끝없이 공격하였다. 이때 고우루 단군은 군대와 고리국왕 고진을 보내어 위만 조선의 경계를 위협하였다. 기원전 108년 결국 위만조선이 함락되었다.

고두막 [편집]

'고두막' 또는 '동명왕' (기원전 108년 ~ 기원전 60년)은 동명국의 창건자이며 북부여의 5번째 단군이었다. 그는 기원전 86년 해부루 단군을 몰아내고 북부여에서 권력을 잡았다. 그해 국호를 졸본부여로 바꾸었다.

고두막은 고열가 단군의 후손으로 그는 진조선의 마지막 단군이었다. 그는 해모수와는 친척이었다.

기원전 108년 위만 조선이 약탈되었을 때 고두막은 군대를 모아 번조선의 영역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위만 조선이 몇 년 있었던 곳이었다. 그해 고두막은 동명국을 창건하였다. 고두막은 동명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동명왕은 서서히 군대를 모아 한나라 군대를 공격하였다. 그는 19년의 전투 후에 한나라를 영역밖으로 몰아내었다. 기원전 87년 동명왕은 북부여의 고우루 단군에게 항복하고 참여할 것을 권하는 사신을 보냈다. 그러한 위협적인 전언을 받고 고우루 단군은 근심하다 병들어 수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고우루의 사후 그의 동생 해부루는 왕좌에 올랐다. 이때 동명왕은 대병을 이끌고 북부여를 공격하였고 동쪽의 동해까지 달아나는 해부루를 추격하였다.

기원전 86년 해부루는 동부여를 창건하였다. 그때 동명왕은 북부여의 5번째 단군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졸본부여라 불렸다. 동명왕은 그의 장자였던 고무서 왕자를 북부여의 태자로 삼았다.

고무서 [편집]

고무서(재위 60 BCE - 58 BCE)는 북부여의 6번째 단군이며 졸본부여의 두 번째 단군이었다.그는 고두막 단군의 태자였다. 고무서는 소서노의 아버지였으며 그녀는 후에 고구려 동명왕의 아내가 되었다. 그리고 비류와 백제왕 온조의 어머니였다.

고무서는 기원전 59년 고두막의 사후 왕좌에 올랐다. 기원전 58년 그의 치세 2년에 해모수의 직계 후손 고주몽이 졸본부여로 왔다. 고무서는 즉시 그를 받아들이고 고주몽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수개월 후 고무서는 그의 딸 소서노와 그를 결혼시켰다. 고무서는 그 해 한참 후에 죽었다.

고무서는 아들이나 혈족의 계승자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새 사위 주몽은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북부여 7번째 단군이 되었다. 기원전 37년 그는 고구려를 창건하였다.

고주몽 [편집]

고주몽은 생부는 해모수의 4대손에 해당되는 고모수 또는 불리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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