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가족 간의 호칭을 중심으로 -

                                                                                                                      정양완 /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말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그가 속해 있는 지방이나 가족 공동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내가 써 온 낯익은 말들, 내게는 낯선 말들을 특히 호칭을 중심으로 적어 볼까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의 호칭은 꽤 엄격하였다. 어렸을 때의 일이다. 우리 큰언니네는 식구가 열 일곱이나 되었다. 우리 형부는 외아들이었건만 사촌, 육촌, 팔촌들이 다 거기 와서 학교에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엌일을 맡아 하는 친척 분 말고도, 빨래나 푸지(풀 먹이고 다듬거나 다리는 일)를 맡아 하던 걱실걱실한 여장부가 있었다. 형부를 업어 기른 공로로 그 아들까지 줄곧 같이 살아왔다. 어른들은 그를 철수 어머니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 조카들은 그를 차마 철수 어머니라 부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저 할머니라 불러 대었다. 우리 아버지는 아이들의 그런 호칭을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아니, 왜 저 늙은이보고 할머니라 하니? 어디 너의 할머니냐? 원 망칙하게. 그럼 정작 너의 할머니는 뭐라고 부를래?"

낮은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넌지시 하신 말씀이었다. 가족 간에만 쓸 호칭을 아무에게나 휘뚜루 쓰는 것이 종시 꺼림칙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어린 조카들은 눈들만 꿈벅거릴 뿐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나이만 늙수그레하면 무조건 아무런 거리낌도 망설임도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라 불러 버리고, 좀 젊은 이라면 또한 아무런 가족 관계도 없이 '아저씨', '아주머니'라 마구 불러 댄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의 아버지거나 어머니도 아닌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르고, 고모도 이모도 외숙모도 아닌 이에게 함부로 '아주머니'라 불러 버린다. 전에는 한집안이 아니면 그렇게 부르지 않았었다.

이렇게 휘뚜루 부르는 '아주머니'를 만약 '아줌마'라 부르면 얕잡아 보는 듯한 느낌이 있어 듣기 싫어한다.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듯이 아무런 악의 없이 '아줌마'라 해도,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어감이란 무서운 것이다. 실은 '엄마'라는 말도 철이 들면 안 쓰게 되지만, 서울말에서는 늙은 뒤에도 부르는 '엄마'는 어머니의 시앗, 즉 아버지의 작은마누라(첩)를 가리켰다. 나는 '엄마'라 부른 기억이 없다. 내 막내 동생은 응석받이라 '엄마'라 부르곤 했다. "아이구 망칙해라. 엄마라니. 에미가 너의 아버지 소실이냐?"하는 핀잔을 들었었다.

이렇게 엄격했던 호칭이 평등 사회가 되어서 그런지 별 아이들도 다 있다. "학생들 날이 저물었으니 그만들 돌아가 숙제도 하고 예습도 해요." 하며 아파트 수위들이 손전등을 켜들고 집으로 돌려보내려 들면, 어둠을 기화로 맹랑한 중학생들이 담배를 뻐끔대며 뒷걸음쳐 가면서 "야! 이리 와 봐! 대문이나 지킬 것이지, 놀이터까지 왜 와서 야단야! 야! 이리 좀 와 봐! 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은 제 또래끼리의 대화로 착각할 것이다.

우리 친정에서는 밥 덜어 먹는 바라기를 '삿갓 바라기'라 불렀다. 내 친구네 집에서는 모두 '공기'라고 불렀다. 나는 '삿갓 바라기'라는 이름만 알았지, '공기'라는 이름이 있는 것을 꿈에도 몰랐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였다. 나도 놀랐지만, 내 친구들은 별 희안한 이름도 다 봤다고 깔깔대며 나를 놀렸다. 우리 집안 조상 어른에 '공' 자 '기' 자 어른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우리 이모네에서는 발에 신는 버선을 꼭 '보산'이라고 발음하였다. 처음에 나는 막 깔깔대었다. 귀에 선 발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댁에는 '보' 자 '선' 자 쓰는 분이 계셔서 그 발음을 꺼리느라 숫제 '보산'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조상의 휘에 대해서도 조심을 하였는데 요즘 사람은 자기 조상이고 남의 조상이고 가릴 것 없이 친구 이름처럼 ○○ '씨' 자도 ○○ '선생'도 받치지 않고 마구 불러댄다. 도산서원에 가서는 퇴계 선생님 휘를 마구 불러 대지를 않나, 서애 선생 댁에를 가서도 서애 선생의 휘를 또한 함부로 불러 대지를 않나. 인간의 존엄성을 다 고루 누리게 하자는 평등이라는 말이 이렇게 안하무인의 세상을 만들고 말다니!

서민 사회는 꾸밈이 없고 소박하다. 그러나 소박함이 야하거나 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런 기지도 없어서 익살스럽지도 못한 채, 마구 뱉는 천한 말이 민중의 언어는 아니련만, 하나만 낳아서 '어' 하고 길러서 어른도 못 알아보는 상스러운 아이들을 방목하고 만 것일까?

내리내리 하나씩만 낳다 보면 고모도 이모도 아니 친형제, 친자매도 없을 터이니, 삼촌 사촌이 어떻게 있을 것인가? 이런 현실에서 호칭을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훗날 고대 소설을 읽거나 사회학 자료로서 언어 생활의 자취를 연구하기 위해 어쩌면 이런 실없는 이야기가 혹 무슨 보탬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1) 부부간의 호칭

 

"아빠! 이리 와 봐요!"

"엄마! 왜 그래!"

 

이것이 어느 점잖은 부부 사이의 상호 간 호칭이다. 일상적인 대화의 예다.

 

사제 간이 부부가 된 경우에는 "선생님!", "김양!" 하던 것이 아이도 생기고 하면 '아빠', '엄마'로 스스럼없이 부르고 만다. 하긴 아이들의 아빠요 엄마이니까 뭐 얼토당토않은 말은 아니리라 여기는지 모른다.

'오빠'는 바로 남편을 부르는 '여보'에 해당한다. 앞서 본 '아빠', '엄마'와도 같다. 이들은 학창 시절 선후배 관계가 부부가 되었을 때 흔한 호칭들이다.

언젠가 언니와 어느 댁에 갔었다. 그 댁 내외분은 미국서 오래 살다 와서 그런지 "대디!", "매미!" 하고 서로 불렀다. 역시 아이들이 '아빠', '엄마' 하듯, 아이들의 아빠 엄마란 뜻으로 부른 것이다. 언니가 "얘! 왜 그 댁에서는 남편을 돼지[猪]라 부르고 부인을 매미[蟬]라고 부르니? 별 일 다 보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였다.

"자기! 어딨어? 자기!" 하는 호칭 또한 '여보'에 해당되며 젊은 층에 꽤 세력이 확산된 말이다. 집안에서 젊은 부부들이 서로 그렇게 부르므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할 때 "자기! 사랑해. 자기 예뻐!" 하면 "자기! 나도 자기 사랑해. 진짜 진짜 사랑해. 자기! 왕예쁜이!" 하며 깔깔대고 좋아한다.

이런 대화를 들은 적도 있다.

 

"야! 어멈ᄂㅕᄂ!(1) 이리 와 봐!"

"망구야 이리 오래두!"

"아이구! 이 눔의 웬수야! 이리 오라니까!"

 

이렇게 마구 천한 말로 불러 대는 것이 오히려 친근감을 나타내는 줄로 아는 노망꾼들도 있다. 이것은 새파란 부부들에게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투다. "야! 너 그러기냐?", "뭐? 넌 뭘 잘했다고! 시!" 부부간에 경어를 안 쓰는 지방도 있고 그런 가족들도 있기는 하다.

세상에는 정말 별별 사람이 다 많다. 교수님, 박사님, 원장님, 실장님 하는 것은 가정 이외의 학교나 직장 등에서 직위를 밝힐 때 흔히 부르는 호칭이건만, 며느리보고도 '교수님!', 남편보고도 '원장님!', 아들보고도 '박사님!', 동생보고도 '실장님!' 하면서, 가족 관계에서 맺어진 호칭을 후리쳐 버리고 일반 사회에서 부르는 메떡같은 호칭으로 소중한 가족 관계를 냉랭하게 만들고 마는 축들도 있다.

아무리 박사님, 원장님, 실장님, 교수님이 좋기로서니, 정이 듬뿍 밴 "여보!"보다 나을 것인가?

 

 

2) 부모 자식 간의 호칭

 

어려서는 말이 영글지 못해서 '아빠', '엄마' 하다가도 철이 들면 '아버지', '어머니'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마련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부를 때도 어릴 때와 자란 뒤에는 호칭이 달라진다. 친정에서 아주 어릴 때는 "아가!" 하던 것이 이름으로 바뀐다. 이름도 귀여운 나머지 똑똑히 부르지 않고, 우리 아주머니(이모)는 나를 "우리 양와!" 하셨다. 집에서는 "양완아!"였다. 내가 고등학생쯤 되니까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아!"를 빼시고 "양완!" 하셨다. 나는 무슨 큰 예우라도 받은 듯 대득해 하였다. 시집가자 어머니께서는 "강집아!" 하시다가, "석희 어미야!"라고 부르셨다.

나도 우리 애들을 부를 때 석란이는 "난아!" 하며 유난히 사랑스럽게 불렀고 석진이는 "찐아!" 하고 내 사랑을 담아 불렀다. 석희는 "착한아!" 하고 불렀고, 석화는 "화야!" 하고 역시 내 사랑을 듬뿍 담아 불렀다.

내가 아무리 철없을 때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아비", "어미"를 낮추어 부를 줄은 알았었다.

시집을 가서 나는 시어머님께는 "어머님", 시아버님께는 "아버님" 하였다. 시부모님께서는 처음에 나를 "새댁아!" 하시다가 나중에 석희가 태어나자 "석희 어미야!"라고 하셨다. 그와 동시에 남편에겐 "석희 아비야!"라고 하셨다. "어멈아!", "아범아!" 하는 호칭은 정말 귀에 설다. 지방에 따라서는 '아뱀'이 '아배'의 존칭이니 일괄적으로는 말하기 어렵다.

지방에 따라, 가족 공동체에 따라 언어 습관, 어감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3) 며느리가 들어오고 사위가 생기고

 

예전에도 노론(老論)집에서는 요즈음처럼 시어머니를 "어머님", 시아버지를 "아버님"이라 하였다는데, 소론(少論)집에서는 "마님", "영감마님" 하였다. 우리 어머니는 시어머니가 두 분이셨는데 한 분은 우리 아버지의 양어머니시고 또 한 분은 우리 아버지의 친어머니시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아버지의 양어머니 말씀을 할 때마다 "큰 마님", "안방 마님" 하시고, 우리 아버지의 친어머니는 "신래(新來) 마님"이라 부르셨다. 마치 종이 상전을 부르듯. 다른 집에서는 대부분 시어머니는 꼭 "어머님"이라 부르고 시아버지는 으레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역시 스스러움의 표시인 듯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친정 부모나 마찬가지로 '님'자를 떼어버리는 수가 대부분이다. 응석쟁이 며느리는 숫제 "아빠!", "엄마!"라 불러 버리고 남에게 말할 때도 "우리 시아빠!", "우리 시엄마!" 하기도 한다.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아버님', '어머님' 하니까 사위가 장인, 장모보고 '아버님', '어머님' 해도 별 흠이 될 것 없겠지만, 서울 사람의 습관으로는 사위가 장인보고 '아버님' 하고 장모보고 '어머님' 하면 속으로 "넉살도 좋지! 우리가 왜 아비요 어미인가?" 하는 축이 있다. 더군다나, 동창생끼리 상대방의 부모를 스스럼도 없이 '아버님', '어머님' 하면 이건 정말 밉진 않아도 얼떨떨하다. 자기 친부모를 '아버님', '어머님' 할 때는 편지를 쓸 때 말고는 돌아가신 뒤다.

어떤 집에서는 아들이나 며느리를 부를 때 "아범! 이리 좀 와 봐라!", "어멈! 그게 무슨 소리냐?" 하기도 한다. 더구나 방송 매체에서도 버젓이 이렇게 불러 댄다. 어감이란 무서운 것이다. 나의 습관으로는 전에 '아범', '어멈' 하면 종이나 행랑 사람을 말했다. 가령 '이쁜 어멈', '이쁜 아범'식으로.

웃어른 앞에서 아랫사람이 자기 부부를 이야기할 때는, 호칭이 아니지만 "아비가 그랬습니다.", "어미가 그랬습니다." 하며 자기 부부를 낮추었다. 그러므로 할아버지 앞에서 자기 아버지를 높여 "아버지께서 그러셨습니다." 하면 역시 망발이었다. 친정 부모를 시어른 앞에서 말씀 드릴 때는 '밭어버이', '안어버이'라 겸칭하였다. 그러니 시어른 앞에서 '제 어머님께서', '제 아버님께서' 한다면 역시 실수에 속한다. 새신랑, 새색시인 경우는 시어른 앞에서 서로를 이야기 할 때, '그애(걔)'라 했다. 어른 앞에서는 '여보'고 '자기'고 부르지도 못했었다.

 

4) 동서 간에

 

"야단치는 시어미보다 역성드는 척하는 동서가 더 얄밉다."

 

아니, 하필이면 어쩌자고 이런 몹쓸 속담이 생겨났을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더라."

하는 식으로 서로 도와가며 사는 사랑스런 동서 간도 세상에는 많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집안이 구순하려면 맏동서가 너울가지 있고 푼푼하여 손아래 동서들을 다독거려야 하는 것 같다.

"저는 올에 오이지를 벌써 두 접이나 담갔어요. 한 번에 반 접씩요. 막 맛이 들면 매 주일 만나는 동서들에게 열 개씩 나누어주곤 하니까 또 새로 담게 되곤 하던데요. 제가 할 일이 무엇이겠어요? 맛이야 있건 없건 요즈음 젊은이들이 어디 고추장 된장 담아요? 제가 담아서 조그만 항아리에 하나씩 주죠."

밖으로 나돌고 벌이는 교회 활동 대신 소리 없이 집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천하고 있는 한 자매의 말이 나를 감동시키고 나를 되돌아볼 눈물을 주었다.

이렇게 동서 간이 사이가 좋으면 친형제나 다름이 없다.

 

"여봐, 동서!" 하고 불러 대는 손위 동서도 있지만 동서는 지칭이지 호칭은 아니다. 그래도 시댁붙이라 손위 동서는 손아래 동서에게 점잖게 "자네", "여보게" 한다. 손아래 동서는 그저 "형님!" 한다. 조금 촌수가 뜨면 손아래 동서에게도 스스러워 "아우님!" 한다. 이렇게 특별히 예모를 갖추어 "아우님!" 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대접받는다는 으쓱댐보다는 친근감이 아얘는(2) 듯하여 오히려 좀 섭섭하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이렇게 점잖게 부르지를 않고 바로 친동서 간이건만도

"문 교수!"

하고 손위 동서를 부르는가 하면, 나도 격을 맞추어야지 하는 듯이

"저 박 박사!"

하고 불러 댄다. "형님!", "유식이 엄마" 하면 좀 좋으련만, 세상에는 그 흔해 빠진 직위, 학위를 들먹이며, 살뜰한 내 붙이를 그렇게 공식적으로 부르고 마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아마 좋아할 줄 아는 것일까? 정이 듬뿍 든 "형님!", "아무개 엄마" 소리가 어째 구식 같아서일까?

손위 동서가 아래 동서를 부를 때, 갓 시집온 경우에는 "새댁!" 하고 부른다. 물론 남처럼 냉랭하게 부르려면 '아무개 교수'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기가 생기면 "아무개 엄마"라 부른다. 편지일 경우에는 물론 "사랑하는 우리 아우님" 한다.

 

5) 시누이 올케 사이

 

손위 시누이를 동생의 댁은

"형님!"

하고 부른다. 오라비 댁을 손아래 시누이들은

"새언니!"

하고 부른다. 오라비 댁은 손아래 시누이들을

"작은아씨(표준화법으로는 '아가씨', '아기씨')"

라고 부른다. 우리 도련님이 장가들자 우리 집에는 "새언니"가 둘이 되었다. 재치 있고 예쁜 우리 작은아씨들은

"그럼 큰 새언니보고는 '헌 새언니'라 하고 작은 새언니보고는 '새 새언니'라 해야 되나?"

하고 깔깔댄 적이 있었다.

우리 새언니는 일흔이 넘었건만 나를 지금도 "큰 작은아씨"라 부른다.

"작은아씨! 보고 싶어도 너무 멀어 갈 수가 없어요. 작은아씨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 걸어요! 별고 없으시지요? 서방님께서도 안녕하시지요?"

나는 이 전화를 받으며 목이 메어 "새언니!" 하고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맛없는 시누이를 우리 새언니는 보고 싶어하다니! 하고. 그 뒤 나는 친정 아버지 어머니 제사에 참례할 때마다 새언니를 보면 그때의 감격이 새로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우리 새언니는 헛말 치레를 못하는 양반임을 나는 잘 안다. 우리 작은아씨들, 우리 동서 또한 나를 감동시키는 전화, 전갈들을 가끔 한다. 나는 그런 소중한 말들을 내 마음 속 보물함 깊숙히 잘 간직해 두고, 가끔 꺼내 보는 보물처럼 음미하며 혼자 눈물 지으며 고마워한다.

편지로 쓸 때는 동서에게 "사랑하는" 또는 "그리운 우리 아우님!" 아니면 "아무개 엄마"라 부른다. 손위 시누이가 동생의 댁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손아래 시누이가 오라비 댁에게 "아무개 엄마!"라 한다면 좀 야멸차 보인다. 어떤 이는 가족 관계의 호칭을 집어 팽개치고 "거기 '보문 2동'이지요? 여기 '종로 5가'예요." 나 원 이런 살벌한 공문서 같은 인사도 있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전화를 걸면 그것은 일방통행으로 끝나고 만다. 상대방에게 사랑을 듬뿍 전해서 그에게 인생의 살 맛을 넉넉히 불어넣어 주는 그런 대화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속에서 우러나와야 하지만, 어쩌면 습관 들이기에도 달렸다고 본다.

아무리 손아래 시누이에게라도 "아무개 엄마!" 하는 것보다는 "작은아씨!(아가씨, 아기씨)" 하는 것이 나는 듣기 좋다.

"나 1번이예요. 4번 잘 있어요?"

물론 아예 전화도 안 거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런 무뚝뚝한 호칭은 좀 삼가면 어떨까 싶다. 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이 소중하지만 인생을 포로 수용소 같이 매지게 만드느냐, 봄바람 같이 훈훈하게 만드느냐는 정이 담긴 말 한 마디에 있다.

 

6) 형부와 처제, 매부와 처남

 

나는 팔 남매의 다섯째였다. 언니 둘 다음에 오빠 둘, 그리고 남동생 둘에 막내 여동생 하나. 나는 형부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오빠와 남동생을 따라 멋도 모르고 "매부"라 부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 큰 형부는(나는 매부라 불렀다.) 나를 "우리 둘째 처제" 하다가 "아이 참, 처남이지!" 하고 웃곤 하였다.

그런데 어떤 집에서는 자기 처제에게 "야! 영자야, 이리 좀 와 봐!"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을뿐더러, 손을 들어 때리려는 시늉까지도 한다. 시동생을 "어이! 미스터 김!" 하고도 태연한 젊은 형수와도 같다. 사실은 호칭에 담긴 사랑이 문제라 아무리 깍듯이 "처제씨", "도련님"을 받치더라도 "어이, 미스터 김!" 할 때보다 냉랭하다면 문제는 다르긴 하다. 그러나 말씨가 험하다 보면 거기 따른 동작 또한 점잖을 리 없다.

나는 우리 이모부와 어머니, 우리 이모와 우리 아버지 사이에 어떤 대화도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서로 어려워하고 스스러워했을 뿐, 넉살좋게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세상이 달라져서 이제는 "형부"라 부르기도 하고 웃음의 소리도 주고받고, 거의 친남매같이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생의 남편은 처형을 깍듯이 "처형 어른!" 해 가며 잘 모시고, 매부는 결혼 전인 처남일 경우 이름을 부르고, 결혼 뒤 아기가 생기면 "아무개 아빠" 해가며 친동기같이 지낸다.

남자 동서 간에도 그들의 아내들이 구순하다 보면 비웃 마리만 사와도 불러 댄다. 같이 먹자고. 그러면 큰서방님은 홍 서방, 최 서방, 이 서방, 한 서방을 줄줄이 불러 가며 두레반을 놓으라고 재촉해 댄다. 처남의 댁으로서도 '큰서방님', '둘째 서방님' 해 가며 그 분들의 의좋음을 대견해 하고 고마워할 뿐이다.

 

7) 사돈 간

 

예전에도 친구 간에 사돈을 맺는 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데려다 가르쳐 보고 될성부름을 보고 사위 또는 손자사위를 삼아 학통(學統)을 혈통으로 이어가는 수가 가끔 있었다.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배 안의 약혼을 하여서 때로는 색시가 너덧 살이나 손위인 수도 있었다. 정신적으로 깨끗하고 학덕 있는 집안의 총각을 사윗감으로 삼을 때, 사돈 간에는 연줄연줄로 다 알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사돈이란 역시 조심스럽고 스스러운 법이다.

큰언니 댁에 가면 사돈 마님께서는 우리 동생을 깍듯이 "도령님 오셨군요?" 하시며 반기셨고, "작은아씨 어서 오세요." 하며 나를 또한 반기셨다. 그 어른은 극로인이었건만 그렇게 공손하셨다.

"사장 어른,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면 손을 꼭 잡고 들어가 화로의 재를 헤치고 언 손을 녹여 주시곤 하였다.

사돈도 지내기 나름이다. 우리 집이 시골로 돌아다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 휑덩그렁한 전셋집 부엌에 유리 조각같이 반들반들한 옹솥 하나에 간장 한 병, 된장 항아리 하나가 놓였었다고 한다. 그것은 훗날 우리 작은언니의 시어머님이 되신 분의 선물이었다. 남편끼리 하 좋아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안에서도 또한 그 무서운 시절 가난을 같이 위로하며 살았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사장 어른에게 삼국지 이야기며 나파륜(→나폴레옹) 이야기를 듣기도 하곤 하였다. 우리 시어머님께서도 우리 친정 어머니며 언니와 다정하게 지내셔서 이젠 '사돈' 하지 말고 '삼돈' 하자고 농담하신 적도 있었다. 우리가 여러 남매 살던 시절, 어머니가 맛갈스러운 음식을 가끔 해 주시기도 하고, 우리 큰언니는 또한 나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구미구미 잘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돈도 어떻게 만났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마음과 마음이 맞아서 한 혼인은 내내 다정하게 지내는 듯하다.

 

이상 두서없이 이런 말 저런 말을 내게 익숙한 말을 중심으로 또한 낯선 말들과 대비하여 적어 보았다.

말은 자기가 살아온 지방, 시대적 환경 또 가족 공동체에 따라 똑같지 않다. 거기서 자라와서 거기서 써 온 말이 편안하고, 익숙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호칭 등도 많이 나왔다. 사실 대세의 흐름이란 터놓은 봇물과도 같아서 막을 길도 없다. 다만 가족 간의 호칭은 무뚝뚝한 것보다는 정이 어린 것이 낫고, 아무리 가깝고 다정하더라도 역시 야한 말씨보다는 점잖은 말씨가 낫다고 생각한다.

 출처 :  http://urimal.cs.pusan.ac.kr/urimal_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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