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정당 중 가장 오래된 정당은 어디일까요. 한나라당입니다. 1997년 11월 창당했으니 11년7개월쯤 됐군요. 제1 야당인 민주당은 불과 1년3개월여 됐습니다. 사실 1945년 이 땅에 민주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 수많은 정당이 명멸했습니다. 1000년은 갈 거라고 장담했던 정당이 2년여 만에 반 토막이 난 일도 있습니다. 63년 발족한 중앙선관위가 세고 있는 정당이 141개라고 하네요.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과 비교하면 일천한 ‘생명력’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정당 이름이 바뀌고 사람이 달라졌지만 저류를 관통해 온 게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한나라당이 박정희 정부의 공과에 웃었다 울었다 하고, 지금의 민주당이 55년 해공 신익희 선생의 민주당에서 적통을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지금 정당의 뿌리를 살펴볼까요.

고정애 기자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 현존하는 이들 정당의 이력엔 나이테처럼 과거 정당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들여다보면 현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왜 지금 갈등하는지 고심은 뭔지, 또 어딜 지향하는지도 드러난다.

3당 합당 때 민정·민주계, 한나라까지 이어져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90년 2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할 때 통일민주당의 김영삼(YS) 총재가 한 말이다. 이로써 민주자유당이란 216석(전체 299석)의 거대 여당이 탄생했다. 신민주공화당은 곧 이탈했지만 민정계와 민주계의 결합은 한나라당으로 변신한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한나라당으로선 큰 의미가 있는 결정이었다. 근거지가 영남 전체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기를 거치며 대구·경북에선 여권 정서가 강해졌다. 반면 YS의 근거지였던 부산·경남은 야당 성향이었다. 하지만 YS의 선택 이후엔 한데 묶였다. 영남의 의석(현재 68석)은 호남(31석)의 두 배가 넘는다. 한나라당이 ‘곤궁했던’ 야당 시절에도 100석 이상의 정당일 수 있었던 건 영남 덕분이었다. 그림자도 있다. ‘한나라당=영남당’이란 실체다. 상대적으로 민심에 덜 신경 쓰는 풍조가 생겼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졌다. “민심에 둔감하고 권력 싸움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과거부터 있었다.

YS 대통령 시절 이후엔 수도권 공략을 본격화했다. 민주화운동 경험을 가진 인사들이 15대 총선 때부터 한나라당에 발을 들여놓았고 지난해 18대 총선에선 오히려 영남을 압도했다(지역구 의원 150명 중 83명). 수도권은 민심이 언제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51 대 49의 싸움을 한다. 조금만 달라져도 천양지차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수도권 의원들이 민심에 예민한 이유다. 이런 시각차가 갈등을 낳기도 한다. 최근 여권 내 쇄신 논쟁이 그 예다. 의당 수도권 의원들이 더 적극적이다.

동교동·상도동계 각축…민주당은 지금 “전국 정당화”

김성수·신익희·조병옥·윤보선…. 초기 야당사를 빛낸 인물들이다. 하지만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누가 뭐래도 대표적 정치인은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YS였다. DJ의 동교동계, YS의 상도동계(또는 민주계)는 양대 세력이었다. 각각 호남과 영남을 대표했다. YS가 여권으로 가면서 야당 진영에서 영남이 떨어져 나갔고 호남이 주축이 됐다.

야당으로선 텃밭에만 안주하기엔 호남이 작고 좁았다. DJ가 97년 김종필(JP)과 손잡고 공동 정부를 구성키로 약속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수도권을 충청권으로 이전한다는 공약을 한 바 있다. 이른바 호남·충청 연대다. 수도권 민심도 늘 살폈다. 민주당식 표현으론 ‘전국 정당화’다. 근래 4·29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호남 출신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에게 공천을 주지 않은 것도 같은 명분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DJ의 민주당에서 갈라서 열린우리당 실험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80년대 이래 충청당의 시작은 JP에게 있다.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두 차례 돌풍을 일으켰다. 16대 총선에선 “태양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잔잔한 일몰에 있다. 서산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고 했으나 충청도민이 외면했다. 근래 충청 민심은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란 대안을 찾았다.

같은 이름, 다른 정당
60년대 민정당은 정통야당, 80년대 민정당은 집권여당


민정당. 1980년대를 산 사람들에겐 ‘민주정의당’의 약칭을 뜻할 거다. 81년 1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창당한 정당 말이다. 사람에 따라선 대통령 단임 약속을 지켜냈고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한 정당으로, 아니면 정반대로 신군부의 서슬이 퍼렇던 당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집권여당이었다는 점이다.

60년대 사람들에게 ‘민정당’은 전혀 다른 이미지다. 정통 야당 중 하나였다. 당시 시대상은 이랬다. 5·16 군사정부가 63년 기성 정치인에 대한 해금 조치를 풀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과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도 포함됐다. 이들이 만든 게 민정당이다. 이후 다른 야당 세력과 결합해, 70년대 제1야당인 ‘신민당’이 됐다.

이렇듯 우리 정당사엔 ‘동명이당(同名異黨)’이 많다.

민주당이 대표적이다. 50년대부터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에 맞서는 정통 야당이었다. 해공 신익희, 유석 조병옥 선생이 몸을 담았다. 60년 4·19 혁명 이후 짧게나마 집권 경험도 있다. 민주당이란 이름은 이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90년대엔 너무 여러 개가 등장해 헷갈릴 지경이다. 우선 통일민주당의 김영삼(YS) 총재가 90년 3당 합당을 결정하며 여권으로 옮겨가자 남은 이기택 의원이 창당한 민주당이 있다. 이른바 ‘이기택 민주당’이다. 1년여 만에 김대중(DJ) 총재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했다. 그리고 다시 붙인 이름이 민주당이다.

95년 DJ가 정계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따라가지 않은 민주당 사람들은 ‘통합’이란 두 글자를 이름 앞에 붙인다. 하지만 오히려 야권의 분열상만 드러낸 이름이었다. 그래서 세간에선 ‘꼬마 민주당’으로 불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당 소속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열린우리당과 갈라서서 야당 생활을 했던 민주당이 있고, 돌고 돌아 다시 열린우리당과 합당한 지금의 민주당도 있다.

신민당도 다섯 차례, 주요 정당 기준으로 세 차례 등장한다. 61년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당이 첫 번째다. ‘새로운 민주당’이란 의미에서 신민당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두 번째 민주당이 바로 70년대 신민당으로 DJ와 YS가 경쟁했던 정당이다. 80년대 민주화 열기와 YS와 DJ의 정치 재개 움직임과 맞물린 게 선명 야당을 내세운 ‘신한민주당’인 신민당이었다. 85년 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민주한국당·한국국민당의 견고한 3당 체제를 깨는 돌풍을 일으켰다.

정당 누가 많이 만들었나
DJ 네 번, JP 네 번, 허경영 네 번


창당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현재 5개 이상의 시·도당에 각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한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훨씬 더 까다로웠다”고 전한다.

너끈히 그것도 여러 차례 창당한 정치인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중앙선관위가 관리를 시작한 1963년 이후 정당 대표자로 등재된 경우가 네 차례로 가장 많다. 87년 통일민주당에서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을 때, 91년 이기택 의원이 주도하는 민주당과 합당해 다시 민주당을 만들었을 때, 95년 정계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설립했을 때 등이다. 대통령 시절인 2000년 총선을 앞두고도 새천년민주당을 꾸렸었다. 비공식 기록도 있다. 85년 이민우 총재 이름으로 등록한 신한민주당이나, 87년 ‘김영삼(YS)’을 대표로 등록한 통일민주당의 창당 작업 역시 그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게 당시 정치인들의 증언이다. 그래서 반대 진영에선 그를 ‘창당 전문가’라고 부른다.

공식기록상으론 김종필(JP) 전 총리도 네 차례로 등재돼 있다. 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이후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설립한 게 포함됐다. 95년 민자당에서 탈당하면서 자유민주연합이란 이름으로 두 차례 창당한 기록도 있다.

DJ의 라이벌인 YS의 기록은 의외로 단출하다. 87년의 통일민주당과 민주자유당 창당 단 두 차례에만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군소정당의 창당 전문가는 지난 대선에서 ‘엽기 후보’로 불렸던 허경영씨다. 92년 진리평화당을 시작으로 공화당(97년), 민주공화당(2000년), 경제공화당(2007년)을 창당했다고 선관위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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