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론 백제의 멸망의 원인은 의자왕의 실정과 수많은 궁녀들과의 향락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죠.
그럼 의자왕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의자왕( ?~660년, 재위: 641년~660년)은 백제의 제31대 왕이자 백제의 마지막 왕입니다.  성은 부여(扶餘)이고, 무왕과 사택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자 때부터 아우들과 우애가 깊고 사려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으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서동요라는 드라마를 보면 무왕과 선화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되어있지만, 선화공주가 실제 인물인지 가상인물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왕때 부터 신라와의 전쟁이
빈번하였고, 이때 까지만 해도 백제는 신라보다 군사력이 한수위에 있었습니다. 신라로서는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한때 김춘추가 신라왕의 특사로 파견되어 고구려와 손을 잡고 백제를 치기위해 고구려에 갔었지만, 연개소문이 오히려 김춘추를 가두어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최후의 강수를 두게 되었죠. 당나라와 손을 잡았던것입니다. 당시 백제의 군사수는 대략 10만정도 였고, 신라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겠죠. 하지만 여기서 당나라 군사가
당시 신라땅인 충청,경기지역으로 상륙을 하게 됩니다. 이때 상륙한 군사수가 무려 20만이었다고 하니 백제는 1:3의 군사수로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백제에 전세가 불리해지자 그 와중에 지방호족들이 대거 투항을 하게 됩니다. 지방호족들의 군사또한 백제 군사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엔 사비성까지 함락 당하고, 흰머리의 의자왕은 소정방에게 술을 따르는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그후 낙양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죽게 됩니다. 소서노가 일으킨 백제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물론 견훤의 후백제가 있긴 하지만 명분을 만들기 위해 백제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이었고, 사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는 사벌성(지금의 상주)주로 있었던것을 감안 했을때 경상도 출신이 라는게 가장 유력하다. 백제든 후백제든
통일을 못한건 매 한가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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